꼬질한 이메일함을 정리해야 하는 이유

책상이 지저분하니 메일함이라도…

Jinhwan Kim
10 min readAug 20, 2023

요즘 디지털 미니멀리즘이 조금씩 친숙해지고 있는데,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물론 늘 그러했듯 이런 것도 있다이지, 해라! 는 아님. 취존취존

한줄 요약

오늘, 이메일 함을 정리해보자

꼬질한 이메일 함

꽤 많은 경우, (수백개의) 읽은 메일과 안 읽은 메일이 뒤엉켜 있는 아래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아래 이미지는 주작된 이미지이다. 나는 메일함의 안읽은 메일이나 앱의 푸시 등을 전부 읽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으로써 3333은 html 값을 변경하여 만든 숫자다. 그렇지만 예시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일뿐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니 너그러이 넘어가자.

이렇게 너저분하게 널부러진 디지털 공간은 현실의 책상과는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거나 오염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물론 내 책상도 혼돈속에 규칙이 있는, “오염된” 상태이다)

심지어 확인하지 않은 메일이 9999+개 여도, 보여지는 숫자 표시 외에는 내 삶에 전혀 영향이 없을 것만 같다. 디지털이니까

그러나 연구와 조사에 따르면, 디지털로 인한 오염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뿐 생각보다 크다. 위의 메일을 하나 보내거나, 메일함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발생하는 탄소와 이 거대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소모해야하는 전력, 물, 그 외 환경 자원들은 정말로 어마어마하다.

꼬질하지만 메일함을 유지해야하는 기업

메일함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사용자가 이메일을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클라우드와 데이터 센터를 포함한 통신 인프라를 사용하고 이를 유지해야한다. 물론 이 인프라를 “물리적으로” 만드는 역할은 또 다른 기업이 하지만, 이 역시 어마어마한 리소스를 사용한다.

보통 이메일 한건은 0.5~20g의 탄소를 배출해 내는데, 이는 한시간 내내 켜둔 전구의 양과 비슷하다.

적어도 최근 1년 동안 확인한 적 없는 광고성 이메일을, 앞으로 수년간 쌓아두기 위해 (여전히 안본다) 콘크리트를 갈고, 냉각수를 굴리고, 반도체를 찍고 전기를 태워 서버와 디스크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메일은 그래도 텍스트가 주된 내용이기 때문에 그나마 낫다. 이미지를 보관하는 아이클라우드 같은 서비스나, 동영상을 제공하는 유튜브는 더더더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한다.

싸이 형님의 강남스타일 동영상은 1년에 17억의 조회수를 찍었고, 연구에 따르면 말춤이 이만큼 조회되기까지 필요한 전기의 양은 297GWh라고 한다.

다시 말해, 약 3200억을 태워 만든 (국내 최대 규모) 신안 태양광에서 1년동안 만드는 전력 209.7GWh 보다 큰 에너지가 말춤을 위해 쓰였다는 것이다. (물론, 소프트 산업의 가치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비싼”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사용자들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비해 비용을 거의 제공하지 않아도 괜찮다. 대신 개인 정보와 데이터를 기업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이 데이터들은 데이터하는 사람들이 “데이터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활용하여 의사결정권자에게 길어야 한시간 정도 보여질 “숫자와 지표”를 만들거나, “서비스를 개선”하여 사용자로부터 돈을 더 모아오는 용도로 활용된다.

물론 더위에서 다른 목적으로 데이터를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소설과 영화, 그리고 현실에서 접하기도 한다.

데이터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괜히 섹시한 직업이 어쩌고, 21세기의 석유가 어쩌고…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이 “데이터”를 위해 전세계에 데이터 센터를 만들고, 서버의 백업의 백업을 만들고 (카카오처럼 서버 한번 날리면 손실이 어마어마하니까), 비싼 인재들을 고용하고 교육하며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알파고chatGPT의 효과를 생각하면 충분히 뽕을 뽑았을 것이다.

그럼, 사용자는 이득이고 기업도 이득이고 세금으로 나랏님도 이득이면 모두가 메데타시 메데타시한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무환동력 배터리는 없으며, 이 디지털 비용들은 자연과 미래의 인류가 타의로 대신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꼬질한 메일함을 조금씩 정리해야 하는 이유

물론 나는 툰베리가 아니며, 그린피스처럼 포경선과 맞짱뜰 용기는 더더욱 없기 때문에 환경에 대한 이야기보단 생산성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석배햄이 초전도체를 만들고, 상용화 해낸다면 좀 흥청망청 살아도 괜찮겠지만, 지금 당장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여지진 않는다.)

1. 정보의 최소화

꼬질한 내 메일함을 정리한다는 것은, 조금 있어보이게 표현하면 디지털 세상에 있는 내 정보를 줄인다는 것이다.

정보를 줄이지 않으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엘빈 토플러 형님이 쓰신 멋진 단어를 인용하자면 정보과다로 인해, 문제 및 의사결정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정보 중독, 정보의 과잉, 정보 과부하, 정보과다수집증… 으로 쓰이기도 한다.

김밥 천국에서 메뉴를 주문하는 것과, 돼지국밥집에서 메뉴를 주문할 때 어떤 것이 더 피곤한가를 생각해보자.

이 정보 저 정보 전부 다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시스템은 점점 복잡해지고, 그만큼 리소스가 필요하기 때문에 결정이 늦어지거나 효과적인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된다.

마크 저커버그 형님도 결정을 간단하게 하기 위해 정보들을 제한한다는데 효과는 충분히 있는 것 아닐까. ( 그 결정이 머스크와 맞짱깐다는 건 좀 그렇긴 하다)

2.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음

이메일 함이 꼬질하게 넘친다면, 밖에서는 중요한 정보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다. 3333개의 대부분 광고 메일 중 1개의 중요한 업무 이메일이 있었지만 이를 놓쳤다면 …

뚜바님의 블로그, 교수님들은 왜 컨택메일에 답장을 잘 안하실까?

업무에서는 이런 경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계에서는 종종 있다. 교수님들의 메일함은 중요한, 중요하지 않은 메일들이 늘 넘치는 편

교수님은 아니지만, 메일이 읽히기, 보낸 사람의 정보 전달하기라는, 해야할 역할을 잘 해낼 수 있게 안 읽는 메일은 과감하게 삭제하자.

3. 데이터 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음

마케팅이나 캠페인, 혹은 실험등을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경우, 수집된 데이터의 꽤 많은 부분은 “사용할 수 없는 데이터”이다.

가령 뉴스레터를 보냈는데 오픈율이 (100%를 기대하지만) 10%만 나오는 경우가 있겠다. 뉴스레터가 구려서 안 읽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신청만 해두고 신경쓰지 않아 3333이라는 숫자를 만드는 데에만 쓰이는 경우가 정말정말 많다.

데이터가 줄어들면, 데이터 하는 사람들 먹고 살기 더 팍팍해 지는거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메일의 안읽는 메일을 삭제한다고, 구글 데이터 팀이 힘들어지거나 실험을 담당하는 데이터 팀이 힘들어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더 집중해야 할 고객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소수로부터의 광고 메일 효과가 안읽는 대다수에게 보내는 비용을 더 감당하고 남는 경우도 많다)

꼬질한 메일함 정리하는 방법

  • 당연하지만, 안 읽었던 메일을 확인하거나, (제목을 보고) 삭제하자. 푸시 알림이나 뱃지의 숫자가 없어지는 것을 목표로 하면 된다.
  • 보통 휴지통의 이메일은 한달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되지만 휴지통을 바로 비워주면 조금 더 좋긴하다.
  • 만약 정기적으로 “안 읽는 메일”이 온다면, 이를 정기적으로 삭제하는 노력 또한 정말 번거롭기 때문에 메일 구독해지, 수신거부를 하면 된다. (이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법적의무로 알고 있고, 안된다면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내야한다.)
  • 나처럼 아예 그 서비스를 탈퇴 / 해지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조금 더 번거롭기도 하며 취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이런 방법도 있다. 정도로만 생각하면 좋다.

읽은 메일 중에도 삭제할 수 있는 부분은 여전히 많다. 가령 이미 끝나버린 프로젝트의 이메일이라거나, 나중에 다시 보겠지 싶어서 저장해둔 이메일등이 이에 속한다.

  • 이 경우 정말 중요한 메일은 별도의 클라우드로 아카이브하고 (나는 github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 외에는 삭제를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 아 나중에 다시 보겠지” 싶은 것들은 대부분 나중에 다시 안 보기 때문에 (예를 들면 특정 주제 관련 무료 강의 목록, 온라인 세미나의 발표자료 등) 맘편히 삭제해도 된다. 필요하면 어떻게든 찾아서 다시 보게 되어 있다.

메일함 외의 정리를 하는 방법

메일함 정리는 사실 디지털 클린업 데이라는 캠페인의 일부 내용이다.

아마 프랑스에서 2020년부터 시작한 활동인데, 휴대폰의 안쓰는 어플을 삭제하거나, PC의 파일을 정리하거나, SNS를 제한하는 등 여러 디지털 기록을 줄이는 것으로 환경을 보존하자는 의도의 켐페인 정도로, 별도의 설명은 하지 않겠다.

이 캠페인에는 영상을 저화질로 보거나, 인터넷을 금지하거나… 다소 극단적으로는 러다이트 운동으로 보일 수 있는 내용도 있는데 캠페인의 핵심은 데이터 생성과 소비를 줄이자. 이다.

물론 나는 환경까진 잘 모르겠고 내 생산성을 위해 줄여보자의 스탠스로 폰의 어플을 삭제하거나, 푸시를 끄고, 덕덕고와 같은 브라우저를 사용하거나, 스마트워치를 낮에만 차는 등 작고 하찮은 정도로 꼼지락하는 중이다.

번외

이 메일함 정리 이야기는 이전의 회고에서 소개했던,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라는 도서에서 아주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개인적으로는 이메일 외에도 앞서 말한 것, 그리고 소개하지 않은 다양한 방법으로 디지털을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물론 오늘도 여우와 북극곰이 머리 박는 짤을 수십번은 보며 전파를 낭비했다. 지구야 미안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트렌드에 뒤쳐지는 것이 아닐까 와 같은 두려움과 어려움, 그리고 수많은 디지털 금단증상을 느끼고 있지만 원래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해보면 어떻게든 사람인지라 적응을 하지 않을까.

메시 형님을 휴대폰 카메라가 아닌 눈으로 보는 베컴 형님처럼, 디지털에서 벗어나, 아날로그와 사색이 주는 여유와 생산성의 증가를 누려보는 기회에 도전 해보면 좋겠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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