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후기를 쓰는가
후기를 쓰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기존에 있던 후기들이 너무 짧거나, 부정적인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알바의 특성상 일반적인 구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들어가고 동시에 쉽게 나올 수 있다. 있어보이는 말로 고용의 유연성
이 있다고 하자. 아무튼 이 다이소 알바에 대한 자신의 기대와 현실이 다른 만큼 더 나쁘게 평가하기 쉬운 것 같다.
두 번째는 앞으로 개인이 더 독립적으로 일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 같고, 그 방법 중 하나로 다이소 알바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긴 정보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해서다. (애옹킴의 데이터 신포도론에 이은 프리터론..!)
다이소 알바
이 글에서는 하루 2시간 근무하는 입고 도우미를 기준으로 다이소 알바를 서술한다. 또 하나 당연하게도, 매장 바이 매장이기 때문에 내 경험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걸 미리 염두하면 좋음.
입고 도우미 알바의 주요 업무를 한문장으로 표현하면 매장에 물건이 배치 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이다.
이 “물건”은 다이소 물류센터에서 트럭으로 오는데 기사님들은 매장 입구까지만 트럭으로 오고, 트럭에서 물건을 내리고 (하차) 매장으로 옮기는 것이 알바가 (직원과 함께) 하는 일.

- 하루 200~300개 박스를 트럭에서 내리고 매장으로 옮김
- 롤테이너와 엘카(구루마)를 이용 (엘카 발명자는 노벨 물류학상 줘야 됨)
- 상품을 코너별로 옮기는 것이 주 업무
- 합포 박스 분류, 도난 방지 태그 부착, 빈 박스 정리 등의 업무도 포함

물건을 매장의 해당하는 위치 (예를 들어 노트가 있는 박스라면 “문구" 코너)에 두는 것이 일차 업무이다.
준비물은 목장갑 필수, 작은 칼이 있으면 좋다.
칼이 필요한 이유는 들어오는 물건들이 보통 어느 코너에 가야하는지 바로 알 수 있지만, 이름만 보고는 어디로 가야할지 애매한 애들이 있기 때문에 박스를 열어 봐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칼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내 기준 이렇게 생긴 칼이 젤 편했음.

제일 귀찮은 것은 플라스틱 수납함
인데, 얘는 수납 코너로 갈 수도 있고 주방 코너로 갈 수도 있고, 문구 코너로 갈 수도 있고, 심지어 뷰티 코너로도 갈 수 있다 ㅋㅋㅋㅋ
매장에 따라서 몇가지 업무가 더 추가되거나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나도 잘 모르고 보통 알바 공고에 쓰여 있다.
알바 매장 선택 방법
나는 상당히 편한 매장에서 근무했다. 같이 일하는 직원분들도 아주 나이스 하셨고 (동네 이모들 만큼 내적 친밀감 느껴버림) 매장 환경도 알바하기 편한 매장이었음. 같이 일하는 알바, 직원 뽑기야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일하기 좋은 환경의 매장은 다음과 같다.
- 1층
- 단층
- 대형 마트 내부
- 엘리베이터 있음 (고객용 X 물류용 O)
- 매장이 넓음
먼저 1층에만 있는 매장이 있다면 최고다. 트럭에서 내려서 들고 가는 것이 간단하기 때문
그 다음으로 2층에만 있거나, 3층에만 있거나 하는 단층 매장. 1층 보다는 번거롭지만 트럭에서 한번만 올라가면 되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
대형 마트 내부에 있는 다이소는 물류용 엘리베이터나 마트용 재활용장 등의 마트의 인프라를 같이 사용하므로 좋다.
(물류용) 엘리베이터 있음은 알바 하기 전, 무조건 무조건 무조건 확인해보기를 권장하는데 단층이 아닌데 엘리베이터가 없다면 그 계단을 오르내리며 2–300개 박스를 옮겨야 한다. 주 6일 동안 꼬박꼬박
5번은 조금 갈릴 수 있는데, 작은 매장보다는 더 널찍한 매장이 짐 옮기거나, 알바의 수가 많아서 괜찮다고 생각함
그래서 제일 좋은 매장은 롯데마트 같은 대형 마트 1층에 널찍하게 있는 매장. 제일 빡센 매장은 지하부터 3층까지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매장.
- 시간
알바 매장에 이어 알바 시간도 꽤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오후 ~ 저녁 타임이어서 알바를 마치고 나면 저녁 먹고 이후 원래 일정을 따라갈 수 있었는데, 매장에 따라서 아침 7시에 하는 곳도 있고 밤 10시에 하는 곳도 있다. 이건 물류 트럭 오는 시간에 따라 다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침 일찍에 하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오후 일정들 좀 깨지지 않을까 싶다. 밤늦게 하면 알바하고 개꿀잠 잘 수 있을 것 같고. 그리고 개인의 일정 외에도 손님이 많은 시간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좋다. 짐 옮길때 사람 복잡하게 많고 매장 동선 막히면 고생 더하기 때문. 이 알바 하는 동안 수면의 질이 꽤 좋아졌다.
기타 알바 전 알면 좋을 팁
안전이 최우선이다.
진짜 중요해서 강조 표시함. 진짜로 박스 천천히 옮기더라도, 안전을 신경 쓰는 것이 중요하다. 박스 옮기다가 사람이나 매장에 부딪히고, 부상이라도 당하면 너무 잃는 것이 많다. (다이소 알바는 고용보험만 있다)
물류 하차는 생각보다 할만하다. 대신 나처럼 몸 안쓰던 사람이면 일주일 정도 너무 힘들지만, 딱 그만큼만 넘기면 요령이 생겨서 적응 됨. (첫날은 밤 10시에 기절햇음 ㅋㅋ)
물류 하차에서 롤테이너에 테트리스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움. 한달 경험치로는 택도 없는 것 같다.
우리 매장은 합포 분류랑, 바코드 찍는 것, 박스 언박싱(까대기)을 직원분들이 해주셔서 진짜 편했다. 알바 빵꾸 났을 때 다른 매장에서 대타로 오신 분의 증언에 따르면 매장 바이 매장이라고. (그러니 알바 공고를 꼭 확인하자)
롤테이너에 박스를 쌓을 때는 크고 무거운 것 부터 앞, 아래 순으로 쌓아야 한다. 안 그러면 옮기다가 떨어지거나, 테트리스 폼 망가지거나 나중에 매대에 둘때 곤란함. 아래 짤은 내가 작성해서 매장에 주고 온 인수인계 문서의 일부

단프라 박스는 옮길 때 잘못 들면 터진다. 진짜 플라스틱 수납함 다음으로 신경 쓸 것이 많은 업무.
근무 복장은 긴바지 + 목장갑 외에는 정해지진 않았는데 가능하면 검은 티를 권장한다. 겨울이고 나발이고 박스를 쉬지 않고 옮기기 때문에 먼지 + 땀이 넘쳐난다.
이전에 비슷한 알바를 안해봤거나, 나처럼 운동을 거의 안했다면 진짜 일주일은 죽도록 힘듬. 사람들이 하루 하고 빤스런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딱 일주일 지나면 적응 됨
소소한 알바 썰
위에까지의 내용들은 작성했던 가이드 문서에서 특정 매장에 제한되지 않는 일반적인 내용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앞 문서에 차마 작성하지 못한, 사소한 썰들
- 피지컬 이슈
앞에서 딱 일주일이 고비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몸이 실시간으로 삐그덕 거리는 것이 체감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먼저 3일차에는 허리가 아프고, 6일차(첫 토요일)에는 몸살이 생긴다. 그리고 7일차 부터는 손목이 아프고 그 다음에는 무릎이랑 발목이 아파온다. 근데 이 통증들은 대체로 내가 활동에 필요한 근육을 제대로 못 써서 생기는 게 아닐까 싶고, 하루 쉬고 나면 괜찮아짐.
발목과 발바닥이 아픈 이유가 좀 골 때리는데 롤테이너 옮기면서 저게 좀만 신경 안쓰면 회전하기 때문에 그거 방지하려고 발바닥이 일자가 아니라 사선으로 걷게 되면서 아픔 ㅋㅋ
- 물류 이슈
물류가 참 재미있는 도메인이라고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인데, 물류는 창고에서 매장까지 보내는 것과 매장에서 받는 것은 예측과 계산이 되는데 그 사이는 온갖 변수들로 인해 계획이 깨질 수 있다. 예를 들면 갑자기 도로에 사고가 나서 길이 막혔고, 그로 인해 예정 시간에 트럭이 도착하지 못한다거나, 주말이라 물류 센터가 원활하지 않아서(?) 트럭이 시간차로 여러대가 온다거나…
아무튼 이 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간의 의사소통이 대체로 비동기적으로 이루어진다. (각자 운전도 해야하고 매장 운영도 해야하기 때문)
그래서 이렇게 물류가 밀리면 그날은 알바가 상당히 편하고 (박스가 적으니) 대신 다음날 두 배로 빡셈.
이런 관점에서 이 물류 문제를 푸는 회사들이 많고, 각자의 방식대로 노력 하는 방식이 나는 너무 신기하고 재밌게 느껴진다. 아래는 풀 자율주행 화물차를 운영하고 있는 마스오토 라는 기업의 뉴스
- 도로 이슈
이 다이소 알바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피지컬도 아니고, 테트리스도 아니고, 도로에 오토바이 세워 둔 딸배들이랑 길빵충들이었음.

박스 내려야 하는데 오토바이가 떡 하니 있으면 동선도 개꼬일 뿐더러, 그 오토바이랑 부딪히거나 자빠질까봐 뭘 주변에서 할 수가 없다. (전동 킥보드도 포함) 이어서 길빵충들, 전자담배는 그나마 덜한데 가래 뱉어가며 연초 빽빽 피워대는 인간들은 너무 싫다.
- 애기들
우리나라 출산율 박살났다고 하던데 다이소에 있으면 별로 체감 되지 않는다.초딩도 안된 애기들 엄청 많음 ㅋㅋ 유모차 타고 오는 경우도 많고, 뽀짞뽀짞 걸어오는 경우도 많은데 애기들이 장바구니 매거나 끌고 댕기는 거 보면 하찮고 귀여움.
- 자주 듣게 되는 말
이거 어디 있어요? (이건 하루에 대여섯번씩 들음)
아 다이소에서 살 거 있었는데
그거 집에 있어 사지마 필요없어
꽥꽥 거리는 닭은 매장에 없었어서 그 소리는 못들었고 대신 훈련용 벨소리는 자주 들림
- 제일 무거운 것은 의외로 세제가 아니다
아령 > 배터리 > 흙 > 노트 > 종이 쇼핑백 > 세제임. 아령이야 2KG 짜리여도 여러개 한박스면 10KG 넘으니까 당연한건데, 의외로 배터리가 진짜 개무겁다. 박스 밀도가 장난 아님
긍정적으로 일하는 법
이 다이소 알바를 처음 지원할 때의 목표는 딱 100일만 하자였지만 몇몇 이유로 인해 100일의 장기 지속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장기 지속이 안 되지는 않는다. 근데 이건 본인이 피지컬이 쩌는게 아닌 이상, 본인의 노력보다 같이 일하는 알바가 중요함. (알바의 특성상 진짜 이상한 사람도 지원한다)
다이소 알바는 적당히 힘든데, 이걸 최저 받는 알바가 아니라 돈 받으면서 운동하러 간다. 라는 마인드로 가면 상당히 편해진다. 남들은 헬스장 가려고 한달에 몇만원씩 내는데 나는 갈때마다 시간당 만원을 받는다니 !
또한 이렇게 몸을 쓰는 업무의 특성상 퇴근 하고 나면 업무 생각을 안해도 된다는 것이 좋았고, 금방 끝인데 좋게 좋게 가자 하면서 긍정왕 됨. 부상만 조심하면 매일 매일이 재밌어진다.
박수 받으면서 떠나기
알바 지원 당시 퇴사(?) 일주일 전에는 알려달라고 했어서, 미리 통보 하는 동안 빈손으로 하기가 좀 그래서, 와이즐리 종합비타민 사서 돌렸는데 다들 엄청 좋아해주셨다.

그리고 비타민이랑 앞서 잠깐 언급한 알바 가이드를 문서로 만들어서 드렸는데, 이 단기 + 몸 쓰는 + 회전율 높은 알바의 특성상 알바에 필요한 경험과 지식들이 다 구전 문학 형태로 전달되곤 한다. 이 구전 문학을 만약 알바 중 한명이라도 고인물이 있다면 그 사람이 전달 할 수 있지만, 한명도 없다면 그때는 직원들이 매번 새로 가르쳐야 하고, 새로 트레이닝한 사람이 나가면 또 문제가 반복 된다. (나 알바 하는 동안에도 대타를 포함해 4명이 들락날락 함)
그래서 내가 들었던 내용들 기억나는 대로 정리해서 매장에 한 부 주고 왔는데, 마찬가지로 엄청 좋아하심. 이런 거는 알바 아웃소싱하는 회사나 본사 차원에서 하면 더 효과적일 것 같다.
기타
- 역시 알바도 일 만큼이나 같이 일하는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
- 내 경험은 다이소 입고도우미 희망편이고, 다이소 갤러리가 절망편임 ㅋㅋ
- 혹시나 이걸 투잡으로 고려 하는 것은 상당히 오만한 생각이라 말하고 싶다. 다른 알바 + 이 알바는 가능한 데, 다른 풀타임 + 이 알바 투잡은 불가능이다.
- 너무 재밌는. 물류, 유통, 오프라인 도메인은 언제든 채용 / 협업 제안 받는다. 파트 타임은 더 환영. 근데 아래처럼 짜치게 박사님한테 지원 동기, 역량, 어필 이딴 거 200자 써달라는 HR 데리고 있는 회사는 사절. (지인이 지원해보라고 추천했던 바이오 회사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