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 회고
새로운 시작
삐걱거림
이 결과의 징조는 9월쯤 부터 조금씩 느껴졌다. 가을이 시작할 무렵, 기존의 경험이나 개인의 흥미, 역량과는 관계 없는 “굉장히 곤란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클라이언트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프로젝트였겠지만, 내가 잘하는 부분이거나 경험이 있는 분야는 아니었고 더 나아가 앞으로 유사한 프로젝트로도 다시 하거나 더 나아가 잘하고 싶지도 않은, 여러모로 곤란한 프로젝트였다.
설X가X, 프로젝트 내/외부의 커뮤니케이션도 엉망진창으로 느껴졌고, 늘 그러하듯 일의 양과 크기에 비해 빠듯한 타임라인은 9월과 10월 연휴를 태워가며 내내 “워드” 작업을 하게했지만, 결국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많은 생각들을 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 정체성과 역량을 비롯한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생겨났다.
사실은 내가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그렇게까지 잘하는 것이 아니었거나, 혹은 시장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아무튼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던 것 중 하나는 “경험은 없지만, 수요가 많은” 새로운 역량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타인의 수요를 채우는 것은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늘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종종하는 생각이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갑자기 재용이형이나 혹은 팀 형이 회사 차원에서 진행하기로 결정한다면, 자본과 역량, 경험등 더 큰 리소스를 활용하는 그들과 차별할 수 있는 점이 무엇일까? 라는 대답이 준비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차별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관점으로 이제부터라도 (수요에 맞추기 위해) 새로운 X를 연마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나는 (내 분야에서의 나처럼) X만 오래 해온 사람들, 또는 나와 동일하게 이제 시작하지만 머리가 쌩쌩하게 굴러가는 학부생들을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었고, “시장”의 관점에서도 그렇게 좋은 판단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R에 대해서는 (몇년째 혼자 주장하는 말이지만) 한국에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 손에 꼽는다. 라고 생각하고 글로벌 기준으로도 충분히 먹힐 만한 정도로 도달했다는 것을 올해 해외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 수 있었것이 더더욱 행동을 망설이게 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사회나 조직에서 그렇게까지 필요로 하지 않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만으로 가치를 주장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이 아닌가에 대한 생각도 있었다.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시골에서 도자기 굽는 노인처럼 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위기는 기회다
곤란했던 9/10월과는 반대로, 11월은 굉장히 여유가 있는 시간들이었다.
기존에 해오던 프로젝트들은 회사의 다른 사람들에게 “인수인계" 되었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도 않았다. “곤란한 프로젝트”를 어느 정도 마치면 태웠던 연휴 만큼은 휴직을 반드시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단순 휴식 외에도 일정과 시간상의 여유가 주어지면, 해야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이 꽤 밀려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부터 쎄한 느낌 또한 들긴 했다.)
사실 이전부터 회사는 내게 많은 자유(와 페이)를 주었고, 그만큼 뭔가를 만들어내야 이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원하진 않았지만) 이 기간 동안 내년에는, 이후에는 이 회사가 뭘로 먹고 살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오랜 시간 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유레카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떠오르는 것들이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 “회사의 방향과는 다소 동떨어진” 것들이었다. 추가로 회사의 방향에 대해서 도전하면서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회사의 방향과 내 방향을 맞추는 것이 왜 중요한 가. 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굳이 더 다루지는 않겠다.
아무튼 회사의 방향에 크게 영향을 주는 도메인. 이 “바이오 / 메디컬”은 여느 비즈니스 도메인처럼 특별한 성격들을 가지고 있는데, 비즈니스의 중심에 회사와 고객(환자)을 제외하고도 “병원”과 “정부”가 늘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늘 있는 WWE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UFC가 되어버린 한국의 의료 상황은, 남 일로만 생각했지만 회사에도 조금 늦을 뿐 영향을 주었다. 의료 상황 외에도 회사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에 “국가 R&D” 또한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는 특별히 “고박"을 뚜드려 맞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롯데 같은 머기업도 헬스케어를 접는 마당에 그동안 잘 버텨온 것이 더 용한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만, 위기 자체는 전혀 기회가 아니고 (기위다 !) 위기에서의 “도전”이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 위기의 상황에서 회사가 어떤 도전을 해야할지를 꽤 고민했다. 나름 내년 출사표를 준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다시 한번 “회사의 방향”과 맞지 않아 출師표가 아닌 출社표가 되고 말았다.
글에서 “회사의 방향과 맞지 않다”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여기서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은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같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에 수많은 조직에서 수많은 시간을 들여 “Align” 미팅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상상이다) 아무튼, 회사의 입장에서 나는 비용은 비싸고 사용 범위는 제한적인 “사치품”이었다. 닭 잡는 칼로 충분한 상황에서 굳이 공룡 잡는 칼을 들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결국 차라투와의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퇴사 부검
넷플릭스에는 퇴사 문화로 부검 메일이 있다고 한다. 퇴사하면서 “일종의 형식화된 리뷰”를 이메일로 공유하는 것. 이를 통해 더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함이 목적이다. 그렇지만 회사는 내부 이메일을 그렇게까지 쓰지 않을 뿐더러 이러한 것에 크게 신경을 쓸 상황도 아니기에 그냥 여기 써보려고한다.
- 왜 떠나는지
“(공식적으로는) 회사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회사의 방향과 내가 생각하는 회사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 아닐까. 회사나 나, 누군가의 귀책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TPO 때와 장소, 상황이 맞지 않다. 정도로 생각한다.
- 회사에서 배운 것
“의사 생태계"를 비롯해서 배운 것이 정말 많지만, 세가지 정도를 짚고 싶다.
하나는 내가 어떤 것을 잘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미처 다듬어지지 않은 것을 찾아서 발굴하고 다듬는 것”에 조금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보통의 개발자는 절대 해볼 수 없는 “심오한" 고민이고, 이는 내가 어떤 커리어를 가지더라도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세번째, 편법을 쓰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졌다. 어줍잖게 잔머리 굴리지 말고, 손해를 보는 것 같더라도 우직하게 하는 것이 결국에는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고, 무엇보다 마음이 떳떳하다. 비슷한 결로,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의 중요성 또한 배울 수 있었다 (경찰서를 가면서).
- 회사에 아쉬운 점
없다. 종종 말해왔지만 한국에서 내가 가장 빛날 수 있었던 회사라고 생각한다. 헐리우드에서 많이 보이는 ex-부부들 처럼 멀리서 응원하겠다. 회사와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돈키호테 이야기의 끝을 함께 보는 산초가 되고 싶었지만 미처 그러지 못했다는 것.
- 앞으로의 계획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한국에서 차라투보다 R로 빛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동안 해온 R과 Shiny는 이제 취미 정도로만 하고, 아예 다른 분야로의 시작을 생각하고 있다. 아래처럼 IT를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 최고의 R 개발자는 없다 이제
- 회사의 메시지
오피셜은 아니지만, 아래 블로그의 독수리 교육법이랑 대충 비슷한 내용. (사실 독수리가 절벽에서 민다는 이야기는 뻥이라고)
차라투 회고
다시 말하지만 차라투에서의 시간에 대해 후회는 없고, 아쉬움도 없다. 그 동안을 생각나는 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내게 기대하는 바를 정기적으로 확인했고 (기대하는) 주어진 일을 잘 해냈다. 구체적인 프로젝트들은 굳이 쓰지 않겠음.
- 나의 “빛나는” 회사 생활을 위해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고 여러 고민과 도전들을 해냈다.
- “신기술” (사실 신기술은 아니지만)을 꾸준히 발굴해냈다. webR이나 wasm, electron, quarto, shiny 관련 잡기술들은 정말로 한국에서 내가 제일 잘했다.
- useR, shinyConf, R/Pharma, 데놀, 한빛앤, r-weekly, medium, r-bloggers, 회사 블로그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회사의 이름과 기술을 많이 알렸다.
- 책도 썼고, 강의와 인턴십을 다듬었다. 인턴십 페이지 보고 연락오는 수상한 의대생들이 한둘이 아니다.
- 분야를 막론하고 외부 인재들과의 만남을 꾸준히 주선해왔다. 미국 FDA에서 R 쓰는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결코 없을 거다.
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주변에서 꽤 자주 조언 해주셨다) 회사의 안 좋은 상황을 대비해서 개인의 planB를 준비하는 것인데, 이는 도의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하지 않았지만 했어야 하나. 라는 생각도 조금은 든다.
물론 마지막 해고 미팅까지 할 수 있는 여러 시도들을 다해봤고, 좋은 결과 아쉬운 결과들이 섞여있지만 어쨌든 후회와 아쉬움은 없다. 뭘 더했어야 하나, 혹은 뭘 하지 않았어야 할까. 라는 질문이 들긴 하지만 그냥 자연재해를 만났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끝